※ ED1 後
시오리는 그 일이 일어난 후로 방학이 끝날 때까지 아카자와 마을의 자료관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가야되지 않아?', 스가가 그렇게 물었지만 시오리는 방긋 웃어보였다.
「지금은 방학이고, 집에 가도 혼자인걸.」
그 말을 듣자 스가는 마치 자기가 혼자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 반응이 왜인지 모르게 기쁘다고 생각한다. 분명 스가는 시오리보다 오래, 아주 오래 혼자였을 텐데, 자신보다도 남을 걱정하고 있다. 그답다고 느끼면서, 어렸을 때처럼 그의 두 볼을 감쌌다.
「괜찮아. 지금은 스가군이 있고..., 사쿠마도, 순경님도 있으니까.」
「..........」
아무 말 없이 스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오리는 어쩐지 두 손으로 감싼 그의 볼이 뜨겁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
「오늘 저녁은 내가 하게 해줘.」
어리둥절해 하는 스가에게 시오리는 다시 한번 말했다.
「저녁, 저번에 해줬을 때.. 나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
스가 군 요리, 숯맛이 났었지. 그 때의 감상을 떠올리자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그동안 배웠던 간단한 요리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스가를 위해 요리하고, 음식을 먹는 그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새까맣게 그을린 흔적이 군데군데 묻어나는 부엌은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이 곳을 봤을 땐 누가 이렇게나 태운걸까 생각했었다. 음식의 반 이상을 검은색으로 익히면서도 요리에 열중하는 것을 떠올리니 새삼스럽게 새로운 기분이 든다.
대강 준비를 하는 시오리의 곁에 어느새 와서 서있던 스가가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적힌 메모장을 내밀었다. 무언가 해주고 싶어한다는 건 이렇게 글로 안 봐도 알 수 있지만 새삼 기쁜 건 어쩔 수 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꼭 내가 하고 싶으니까 기다려줘, 라고 말하자 무언가 말하려는 듯 우물거리다 수저를 놓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깔끔하게 보관되어있는 앞치마를 꺼내 둘렀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까맣게 탄 팬의 바닥을 벗겨내는 일이었다. 비록 결과는 참혹했지만 그가 많이 노력했다는 건 분명하다. 탄 자국을 모두 치우고 난 뒤, 냉장고에 남아 있던 재료를 꺼내 밥과 함께 볶았다. 소박하지만 향긋한 음식 냄새가 좁은 부엌 안을 감싸고 돈다.
덜그럭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두 명분의 그릇을 들고 있는 스가가 있었다. 좀 전부터 서 있었던 것 같은 모습에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상한 걸까. 한순간, 스가의 요리를 먹었을 때 느꼈던 향수와 같은 느낌이 또 밀려들어왔다.
'스가군은 진짜 귀여워.'
'...시, 오리....저기, 그.'
'응? 왜, 스가군?'
'...난, 남잔데...'
기억을 찾았을 때, 그 조각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모든 기억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남아 있는 게 있었던 것 같다. 스가군에게 귀엽다는 말을 했었구나. 사소하지만, 소중한 추억이다.
「왜...?」
「아, 아냐. 그릇 줄래?」
스가가 가져온 접시의 무늬는 그가 만들었던 야광석의 빛과 색을 닮아있었다. 그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밥을 옮겨 담은 접시를 나르려는데 별안간 쾅쾅,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예상되는 인물은 모치즈키 순경뿐이다. 스가는 시오리를 힐끔 보더니 부엌 밖으로 나갔다. 남겨진 시오리는 그릇을 하나 더 준비해야 할까 고민했다.
예상 밖으로 돌아온 것은 세명이었다. 익숙한 갈색 머리카락의 뒤에서 보라색으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불쑥 나왔다. 사쿠마?! 반사적으로 놀라버린 시오리의 앞으로 사쿠마가 종종 뛰어왔다.
「밥 만들고 있었어? 냄새 좋다- 관리인이 만든거랑은 차원이 다르...아얏.」
「얻어먹으러 왔으면 가만히 있어야지.」
「그치만 진짜 못하잖아.」
들어오자마자 까불거리는 사쿠마를 모치즈키가 제재했다. 시오리는 그 둘을 보며 하나가 아니라 둘이 더 필요했네, 라고 말하고는 웃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릇을 가지러 가는 스가에 대해서는 모른척 하기로 한다. 정말, 사쿠마의 말대로 성실하기 짝이 없다.
「그럼,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만 전...아니, 관리인이랑 동거하는 거네?」
「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사실이 식사를 하던 사쿠마의 입에서 나오자 시오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맞은편에서 풉, 하는 소리와 함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먹다가 사레가 들린 듯 얼굴이 붉어진 스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 스가군, 천천히 먹어도 돼. 걱정이라고 말을 건네지만 어쩐지 그 말을 듣고 기침소리는 심해진다. 시오리는 다 먹은 접시 위에 수저를 올리며 의아해했고, 곁에 앉은 사쿠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나도 많이 놀러올거고.. 언니 요리를 얻어먹을 기회가 많겠는걸.」
모치즈키는 자연스럽게, 좋든 싫든 자신도 이 곳을 방문하게 될 날이 많을 것이라는 걸 예감한다. 어차피 시오리가 오기 전에도 사쿠마는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다. 이제와서 달라질 것도 없지만, 분명히 전과는 다른 것이 있었다. 멍한 시오리의 얼굴과 발게진 스가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예의 없게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응, 많이 와줘. 요리해줄게.」
하지만 미소지으며 말하는 시오리와 긍정을 표하는 스가의 모습에서, 그는 어른의 직감으로 또 하나를 예견할 수 있었다. 방해라기보단, 필요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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