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은 건조한 공기로 가득했다.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에 얕은 기침을 뱉으며 한쪽 다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여 발을 딛었다. 발바닥에 닿아오는 나무의 느낌에 안도하며 어색하게 다른 편의 다리를 뻗어 똑바로 섰다. 단단히 땅에 붙어있는 감각. 그것을 확신하고 나서야 좁은 보폭으로 걷기 시작한다.
앞을 향한 손으로 사물을 더듬으며 전진하는 것은 상당히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발적으로 머릿속을 덮쳐오기에 걸음 하나하나 긴장이 실린다. 여느 장소보다 익숙한 곳인데도 낯설기 그지없어 금방이라도 구덩이에 발이 빠지거나 돌출된 사물에 부딪힐 것만 같은 예감의 연속이다. 현관문까지의 거리는 몇 발자국 되지 않았건만 지구의 반대편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느린 마중에 답답할만 한데도 문 뒤의 상대는 참을성있게 기다려주었다.
밖은 작년과는 다른 강추위로 영하까지 내려간 탓에 현관문 가장자리부터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들로 젖어 있다. 손을 대자 축축한 물이 느껴져 화들짝 떼어내고 손가락끼리 비비적거렸다. 찝찝한 채로 차가운 손잡이를 잡고 돌려 문을 열었다. 쌀쌀한 공기가 화악 끼쳐와 닭살이 돋았다. 보이지 않는 시선이 똑바로 안을 향해온다.
아무것도 안 사와도 충분하다고 했었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또 손에 잔뜩 쥐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울은 대충 앞에 고개를 꽂았다가 몸을 돌려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또 뭘 사온거야, 키드. 빠르게 안으로 걸음하지만 어쩔 수 없이 느릿한 동작이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팔을 잡아챈다. 소울이 몸을 외로 틀며 어색한 얼굴을 했다.
"..안 도와줘도 된다고."
가볍게 천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은. 소울이 꿀꺽 침을 삼켰다. 마주 보고 있다. 직접 눈을 열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짧은 호흡이 섞이고, 키드가 물러나며 팔짱을 끼듯 지지했다.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 꿰뚫어보는 말에 가볍게 혀를 차며 몸을 기댔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팔을 붙들어오는 힘은 전보다 세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도 착각일까, 소울은 온통 새까만 공간 안에서 생각한다.
소파에 소울을 앉히고 나서야 팔을 푼 키드가 테이블 위에 가지고 온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매번 비슷하게 가져오니 아마 저번과 같을 것이다. 상비약, 먹을거리, 필요하다고 했던 것. 먼저 소울이 무언가를 요구한 일은 없지만, 키드는 꾸준하게 필요를 추궁했다. 끈질긴 그 성격은 결국 답을 얻어내고서야 현관을 나섰다.
처음은 아마도 새 칫솔과 같은 잡다한 물건이었다. 비누곽, 새 헤어밴드, 머그컵. 점점 늘어나는 주문에도 키드는 별말 없이 목록을 만들어 착실히 배달해주었다. 그런 배려가 더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짐일 뿐이야. 툭 얹힌 말이 모난 돌처럼 속안에 자리를 잡았다. 숨을 쉴 때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굴러다녀서 가끔은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시야를 잃은 뒤로 몇 주나 되는 시간이 흘렀다. 정확한 사정을 설명하기 귀찮다며 불의의 사고라 일축했지만 키드가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절대 부상을 당할 리 없는 전투에서 두 눈을 잃은 경위를 모두가 애타게 물어왔다. 소울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집에 틀어박혀 일체의 방문을 거절했다. 그리고 키드가 찾아왔다.
그 아이는 괜찮아.
그의 첫마디였다.
그런데 소울, 너는 어떻지? 뒤이어 꺼낸 말에 소울은 대답을 망설였다. 어느 쪽도 괜찮지 않았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당장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캄캄한 어둠에 갇혀서, 두 번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소울은 아무도 없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홀로 울컥 감정을 터뜨렸다. 이제 가야 할 곳은 어디에 있지? 키드가 오기 전까지 최소한의 활동만 하며 단 한번도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키드."
그가 오기 전까지 누워있던 그대로 소파에 몸을 늘어뜨린 채 소울이 작게 입을 열었다. 키드는 포장을 뜯다 말고 멈춘 뒤 몸을 일으켜 다가갔다. 무슨 일, 이라고 말하려던 것을 그만둔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가 한가득 제 눈을 채웠다.
키드, 나. 달싹이는 입술은 계속 말을 이어가려는 듯, 혹은 금방이라도 다물 듯 떨린다. 키드는 몸을 겹친 그대로 입을 맞췄다.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 흰 손을 가져가 혼란스러운 눈을 감기며 키스를 이어갔다. 마른 입술을 적시며 파고들자 아, 하고 뱉으며 움찔 떨었다. 시야가 차단된 몸은 전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바닥을 보인 소울의 손에 제 손을 겹쳐 깍지를 끼며 키드는 그가 조금 말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 것을 사오는 게 좋았을텐데. 가벼운 후회가 금방 입새로 흘러내렸다.
쓰고 나서 생각한 건데... 소울 모르게 키드가 ㄼㅈ 사서 서랍에 넣어놨으면 좋겠다
그래서 분위기 잡고 하려다가 소울이 ㅈ도 없잖아..하면 겁나 능숙하게 썼으면.....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