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소울마카로 이어쓸 예정
ㄱㅈㅊㅁ의 신곡이 너무나도 좋다....
오전과 오후의 사이, 점심이 다 되어가는 시간대의 데스 룸은 한적하다.
누군가 작정하고 일을 터뜨리지 않는 이상 임무 목록은 확실히 관리되고 있고 무기-장인 팀은 필요한 것을 골라 취할 것이다. 특별히 호출할 시에는 오전 일찍, 혹은 오후 쯤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붕 뜨는 시간이 있다. 질리는 얼굴의 엑스칼리버는 제 좋을대로 '티타임'이라 명명하고는 했다. 잠시 그 봉제인형같은 모습이 흥에 겨워 지팡이를 휘두르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에 키드는 말하던 것을 멈추고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키드, 무슨 생각하는 거야?"
삐딱하게 서있던 소울이 의아함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저게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버릇이라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건가. 키드는 작은 깨달음에 유쾌해져 찌푸렸던 인상을 폈다. 이번에는 상대가 의문으로 미간을 좁힐 차례다.
대화는 언제나와 같이 시시한 주제였다. 대부분은 그들이 몸담은 사무전에 관한 것으로, 여러 학생들의 입을 오르내리는 기괴한 소문에서부터 특급 임무에 관한 내용까지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사용하는 말투는 진중하다기보다 그저 어린 소년들의 잡담이었다.
사신과 데스사이즈라고는 하나 아직 채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철부지에 불과하다. 소울은 아직도 자세부터 걷는 폼 하나하나가 삐딱했다. 키드는 전만큼은 아니지만 대칭을 완전히 포기하진 못했다. 서투르기 그지없는 소년들의 티타임은 어색함의 극치를 달리면서도 그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티타임에 정작 차가 없는 부분까지도.
키드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부드럽게 웃어보이고 대화의 끈을 잡아당겼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소울은 쾌히 응해온다. 전투도 아닌데 나답지 않게 분석적이군. 키드는 다음번엔 탁자를 하나 놓을까하는 계획을 세우며 생각했다.
키드는 사실 모든 일에 매진하는 성격인데다 기본적인 통찰력이 있기에 타인을 잘 파악하는 타입이다. 그럼에도 평소 주변인에 대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는 않았다. 베이스만 깔아둔 후 천천히 살을 붙이면 되는 것에 매시간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 판단했었기 때문에, 소울에 대한 제 태도는 꽤 커다란 폭의 지진이었다.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새롭게 정보를 갱신하는 것. 지각 운동이라도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다다랐을 때에는 진심으로 데스 더 키드라는 존재 자체가 우스웠다. 그러면서도 소울에게 향하는 두꺼운 렌즈를 치우지 않은 채다.
소울은 상냥하다. 그 전제는 당장 그의 초대 파트너였던 마카 알반에게 극구 부정당할 문장이었으나 키드가 그를 바라볼 때에 가장 밑바닥, 깊은 곳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라스트 데스사이즈는 상냥하기 그지없다. 아닌 척 한다는 비아냥도 들려오지만 소울은 제 상냥함을 숨긴 일은 없었다. 무언가를 숨기는 것에는 재주가 없는 남자다. 블랙 스타라면 안쓰럽게도 속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키드를 비롯한 대부분은 간단히 꿰뚫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타이밍이 맞지 않게 괜히 빈정거리는 어색함 같은 것을.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키드, 나....,
...얼굴에 뭐 묻었냐?"
푸웁. 뿜어져나오는 웃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키드는 이런 방법도 괜찮겠다는 감상을 한다. 정말 심각해보이는 얼굴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를 고민하면서 입가를 툭툭 쳐 가리켰다.
"여기. 좀 세게 닦아내야겠어."
"...진짜야?! "
소울이 찝찝한 얼굴로 세수했는데, 하고 중얼거리며 손으로 입가를 문질거린다. 키드는 턱을 괸 채 느긋하게 관찰하며 치약인 것 같다고 지적해주었다. 사실은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았지만, 제 말대로 힘을 주어 닦으며 짓고 있는 얼빠진 표정이 좋았다. 이제 다 지워졌어? 키드는 미소를 지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거야? 또 그 바보같은 대칭.."
"그렇게 말하면, 난 널 보면서 기분이 나빠져야 하는건가.."
"그런..말은 아니고."
소울이 허를 찔린 듯 고개를 틀며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였다. 키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진다.
곧지 않게 삐뚤하고, 어지럽고, 헝클어져 있는 모양. 소울은 대체로 그런 태도였다. 달력이 통째로 바뀌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해도 변하지 않는 그의 성정이다. 리즈는 첫만남 때부터 두 사람이야말로 절대로 맞지 않을 도련님과 양아치가 아닌가 하고 판단했다고 털어놓았었다. 실상은 도련님들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맞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또한 보기 좋게 빗나가, 두 사람의 관계는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하게 이어졌다. 키드의 대칭 철학 아래에서 소울은 제일 가는 어긋남이고 이단 투성이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깊은 신뢰를 얻었다. 룰의 세계에 무법자라는 것은 VIP나 다름이 없지 않나. 키드는 자주 그런 생각을 떠올려 곱씹었다.
마침내 '편애'라는 단어까지 다다르면 사색은 끝이 난다. 어느새 소울은 잔가지가 많은 머리를 정돈하고 있다. 신경쓰이게 했나. 가볍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손끝을 간지럽히는 머릿결은 생각보다 푹신하다.
"저기... 이건 무슨 뜻이야?"
소울이 이의를 제기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이제 됐어, 하고 키드는 짧게 답한다. 소울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짧은 숨을 뱉으며 알아들었다는 말을 대신했다. 근데 정말 이제 의자 정도는 놓지 그래, 하고 화제를 돌리면서.
"안 그래도 다음에 이쯤 탁자를 놓을 생각이야. 눈여겨봐둔 디자인이 많지. 아, 그러고보니 그 얘기를 깜빡했군."
"설마 탁자를 같이 고르자는건 아니겠지, 키드.."
"무슨 소리야, 소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골라야지."
"이봐, 난 호출받아서 오는 거잖아?"
소울이 적절하게 트집을 잡았다. 상대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 말은 합당한 내용이었다. 소울은 무기의 주인이자 데스 시티의 통치자인 사신 데스 더 키드의 호출을 받는다.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다른 데스사이즈들, 특히 해외 지역에 거주하는 무기들은 부재중인 때가 빈번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건이 되지 않아 임무를 거절하기도 했다. 적어도 소울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키드는 충분히 그 점을 알고 이용할 수 있었다. 와서 얘기나 하자는 시덥잖은 호출도 뿌리치지 않는 그, 파트너쉽과도 닮은 충성심을.
덕분에 소울은 데스 룸이 집보다도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투덜거리는 말이 퍽 일상적이다. 역시 다이아무늬 탁자가 좋겠어, 시메트리하군. 한마디 던져놓자 금방 발끈하며 물어온다. 다이아는 안 어울리잖아.
"고르는 걸 도와주겠다니 고맙군."
"내가 언제?"
"그렇다면 역시 고양이 무늬인가? 블레어와 닮은.."
"그건 더 안돼!"
무얼 상상했는지 적극적으로 외치며 만류했다. 키드는 검지를 들어 거추장스러운 가면을 벗어들었다. 어차피 반쯤 걸쳐져 아슬아슬한 꼴이었지만.
소울은 만날 때마다 그런 건 벗어도 되지 않냐고 지적하나, 이것도 일종의 습관인 셈이었다. 그나마 소울을 호출할 때에나 반이라도 벗어보인다는 사실을 본인만 몰랐다. 둔한 건 불치병이라고,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전투 센스는 좋았다. 적의 움직임이나 계획, 그리고 함정에는 놀랄 만큼 눈치가 빨랐다. 그러나 신은 공평하게 그가 자신에 대한 일은 그 반의 반만큼도 잘 알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키드는 소울의 그런 점조차도 사랑하고 있었다.
사신 데스 더 키드는 소울을 사랑하고 있다. 모든 감정을 뭉뚱그려 그 한 단어로 정의할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집약한다면 제일 근접할 수 있는 말이다. 무기인 에반스를 매우 아끼고 귀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사신이라도 그리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사람의 감정을 넘어서 초월적이라고 해도.
사랑의 세계에는 다양한 것들이 살고 있다. 사신은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가지만을 골라 가졌다. 흔히들 아가페라 칭하는,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가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존재에 대한 지지와 애정을 넘은 희생과 기쁨을.
그런 이유로 데스 시티가 더욱 더 소중했다. 에반스를 품은 장소를 거울을 통해 지켜보는 것은 키드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 뛰어노는 아이들도, 주인과 산책하는 강아지도, 가로등 옆에 자그맣게 핀 꽃도, 너와 함께 있는 모든 것들이 몸 안의 심장과도 같다. 내가 지켜야하는 것은 전부 너다. 키드가 그 생각을 멈추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심중을 소울이 알게 되는 날조차.
키드는 그저 직통으로 그를 호출하고 데스 룸에서 기다린다. 그러면 매번 비슷한 시간에 맞춰 걸어오는 모습이 있다. 상사의 횡포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꼭 온다. 심술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건 키드가 소울에게 향하는 것들 안에는 들어있지 않은 종류다. 지켜보던 것을 바로 눈앞에 두고 바라보고 싶다. 그뿐인 행동에 소울이 응해준다. 그걸로 충분한 일이다.
"..뭐, 아무튼 다음에 호출할 땐 의자라도 준비해두라고."
소울이 몸을 틀며 말했다. 키드가 의아스럽게 눈을 뜨고 보다가 웃었다.
"시간이 꽤 흘렀나보네."
아무래도 과하게 시간을 빌려 쓴 모양이었다. 데스 룸으로 들어오는 걸음이 당당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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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