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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소울]EVERYTHING에서 이어짐
보고 싶은 분위기로 썼는데 어쩐지 키드와 마카가 초월적 보살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고백도 안했지만 사귀는 거나 다름없이 사는 마카소울에 키드소울 끼얹기
두 사람끼리는 서로의 감정을 다 아는데 혼자만 망충하게 모르는 소울이 보고싶었음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
총총 땋은 머리가 살랑 흔들린다. 마카는 빙긋이 웃으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섰다. 양 머리를 묶은 민트색 리본과 짝이 다른 타이즈가 더없이 또래의 여자애다워 키드는 잠시 멈칫했다.
"마카, 오늘 타이즈가.."
"아, 맞아. 시메트리하지 않지?"
키드가 지적하려던 점을 먼저 집어내며 마카가 퍽 즐겁게 웃었다.
마카는 만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여자로서도, 그리고 장인으로서도 우여곡절 끝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조금 달라졌다' 라는 한마디를 얻을 정도는 됐다는 뜻이다. 머리가 더 길었다거나 키가 미세하게 큰 것 같다거나 하는 외적인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 낯설음. 이를테면 어른의 여유로움과 같은 요소였다. 완벽한 존재인 채 못박은 것처럼 변하지 않는 키드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눈치가 조금 는 걸까. 키드는 마카의 눈빛에 어린 기색을 살피며 얼굴을 덮은 가면을 고쳐 썼다. 마카는 웃는 표정 그대로 가면은 벗어도 되지 않아? 하고 물어온다. 키드는 가면의 끝부분, 뾰족하게 조각된 곳을 느릿하게 매만졌다. 벗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러나 딱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버릇이 되서 말이야.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키드가 미소했다.
"친구와 티타임이라도 갖고 싶었다고 하면, 어때?"
"정말 좋지만..., 차가 없잖아?"
마카는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혹 파트너와의 일 때문일까, 추측은 확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사실에 가까웠다. 예전의 두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싸우는 일이 잦았었다. 그 이유가 늦잠을 잤다거나 아침을 먹지 않겠다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지만. 그렇게 긴장을 빚은 둘은 사무전 일과를 보내는 내내 교실 안에서, 복도에서, 식당에서 투닥거리곤 했다. 아무 일 없이 아침을 넘긴 날에는 마카가 괜히 들떠 있었다. 주변 사람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둘 사이를 맴도는 기류는 그 날, 그 순간 관계의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어쩌면 그 때부터였다. 관계라는 것이, 운명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단어가 눈에 잡힐 듯이 보이기 시작한 시기.
장인과 무기는 지극히 필요에 의해 묶여 임무를 수행하고, 100개의 영혼을 모아 데스사이즈를 만들면 그걸로 의무는 끝이다. 그럼에도 모든 콤비가 같은 결말을 맞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영혼을 모으는 과정에서 허무하게 탈락하고 만다. 또는, 수월하게 데스사이즈를 만들고 파트너 관계를 종료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하나의 선택지. 이 때는 단순히 파트너나 동료라는 관계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단계, 즉 연인이 되는 경우이다. 무기가 데스사이즈가 되는 순간 장인-무기의 고리는 끊어진다. 그러나 임무와 별개로 둘은 함께 한다. 가족이 되는 것이다.
마무기인 소울과 장인 마카는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 주변인들은 모두 두 사람의 관계를 기정사실화 하며 놀리기 바빴지만 둘 중 누구도 나머지 한 사람에 대한 독점욕을 드러낸 적이 없다.사귄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절친인 블랙스타가 열심히 꾀어 보았지만 소울은 진심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나선 츠바키의 질문(발렌타인 때 소울에게 초콜릿을 주었냐는 내용이었다)에 마카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안챙겼어. 왜냐니...,그거야 우리, 사귄다거나 하지 않으니까. 확답이었다.
구애하지 않는다. 고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오늘은 안 싸웠나보네."
"응.아...., 그보다 요즘은 별로 안 싸우니까."
"흐음, 왠일로?"
"의외라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줄래.. 소울이 이제 늦잠을 안자는걸."
키드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익숙한 모습을 떠올린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나보군." 진단이라도 내리는 듯한 어조에 마카가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다. 두 사람은 비슷한 내용을 뇌내에서 되감고 있었다. "너무 험하게 쓴 거 아니야? 곱게 돌려달라구." 주어가 없는 문장에도 대화는 막히는 일 없이 이어진다.
불과 3일 전, 키드가 데스사이즈 소울을 대동하고 나갔던 일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조사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 거리의 갱단과 시비가 붙는 바람에 과격한 싸움으로 번졌다. 그 과정에서 소울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착실히 대응했다. 갱단이라 해도 일반인, 진압 중 당하는 일은 없었다. 키드 자신이 소울을 그런 상황에 둘리도 없었지만.
"그런 일은 없어. 나한테도 소중하니까."
다만 사건 직후, 소울은 다소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예상 외의 전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장해가는 라스트 데스사이즈'라는 호칭은 생각만큼 가볍지 않다. 그에게 부과되는 짐은 버거웠고 쉴틈없이 몰아붙여왔다. 슬슬 지칠 타이밍이었다. 쉬는 날보다 일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몸이 일정한 시간에 일으켜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걱정하고 있었지만 직접 전해들으니 역시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응.
우리한텐, 중요하지."
마카의 입술이 웃는 듯 마는 듯 벙긋거린다. 많은 말이 생략되어있었지만, 반복하건대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그저 짧은 몇 마디 말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슴을 울려오는 것을 느낀다. 이 감각은 사신의 수명을 다해 사라질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테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사랑스럽다. "바보를 좋아하는 건 어렵지?" 말없이 데스 룸 안의 어딘가, 뱅글뱅글 떠있는 구름을 바라보던 마카가 돌연 말을 꺼낸다. 키드는 갑작스런 질문에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살풋 웃었다."원래 알고 있었으니까 상관없어." 마카는 같이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세상에는 본의와 상관없이 계속되고 진전되는 사실들이 존재한다. 그 중 어떤 것은 변하기도 하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영속성을 지닌다. 소울이 어쩔 수 없는 바보라는 사실은 그가 데스사이즈가 되고 그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은, 추를 달아 무게를 잴 수 없는 무형태의 혼돈은 기실 모든 일들의 전부터 출발점을 세우고 달려왔다. 알지 못한 사이에 시작해 알고 난 후에도 그치지 못한 것. 소나기처럼 죽죽 쏟아져내리던 마음은 부슬비로 그 형태를 바꾸어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소울이 말이야."
일주일 전에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었었거든. 그 날 저녁은 비프 스튜였어. 내가 요리 당번이었는데 꽤 괜찮게 완성되서 널 초대해서 먹이고 싶을 정도라고 말해버렸지 뭐야. 근데 소울이 잘 식사하다가 갑자기 엄청 투덜거리면서 네 얘기를 하더라구. 키드녀석 맨날 가면 쓰고 있다니까,그것도 반만..., 뭐냐고! 이러면서 말이야. 마카는 한참 제 얘기를 하더니 빙긋 웃었다. 가면남은 순정남인가봐, 하고 키득거리는 모양새가 퍽 짓궂다. "이런, 들켜버렸네." 키드가 질세라 여유롭게 받아치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낯선 음성이 끼어들었다.
"둘만 재미보지 말고 나도 알려달라고."
낮고 여유작작한 특유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홱 돌렸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지만. "볼일이 있으면 나도 불렀어야지, 마카."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채 대화의 주인공이 비뚜름하니 서 있다. 마카는 그제서야 시간을 확인하고 집에서 나온 지 꽤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하게도 데스룸의 시간은 바깥과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절대로 얼마 안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간다.
"미안, 조금 둘만 할 얘기가 있어서."
소울은 가면을 완전히 쓰고 있는 키드를 힐끔 보고 우왓, 하는 소리를 냈다.
"..하? 무슨 소리야."
글쎄? 웃음 섞인 대답을 돌려주며 마카가 등을 돌렸다. 나가려는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가면 속의 금색 눈과 시선을 교환한다.
"그나저나 역시 사신님이네.
..나라면 절대 못할 거야."
잠깐의 부딪힘 후, 바로 곁의 소울에게 눈을 돌린 키드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그건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여전히 연속된 의문으로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소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마카는 의기양양하게 웃어보이고 가볍게 고개를 돌리며 큰 보폭으로 성큼 걸어간다. 그걸로 끝인 이야기다. 어이, 둘이 무슨 얘기하는건데... 소울이 한 박자 늦게 마카를 좇으며 졸라대고, 키드는 가면을 망설임없이 벗으며 그 모습을 바라본다.
*
"늦었잖아, 소울."
그 말을 하는 시선은 정반대의 인물에 꽂혀 있다. 더없이 당당한 얼굴이 똑바로 키드를 향했다.맨 얼굴을 마주한 것은 얼마만이던가. 키드는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날짜를 헤아리다 그만두고 미소지었다. 아마 같은 마음이겠지.
"..어이, 뭔데? 너네.."
둘 사이의 시선을 느끼고 소울이 슬금 뒷걸음질쳤다. 눈치가 좋은 그는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마카는 몇 걸음 정도의 간격을 남겨두고 키드에게 다가갔다.
"네 감정은 이해하지만 나한테도 시간을 줘야해, 키드."
그 말투에 질투와 같은 사사로운 해석을 더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공정한 거래와 닮아 있다.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그가 행복하기 위한. 키드는 다 안다는 양 부드럽게 웃어보였다.데스 룸에 있으면 바깥의 시간이 현실처럼 와닿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낮이라면 좋을텐데. 사신의 바람은 소박하면서도 원대했다. "당연한 말을."
"..언제 이렇게 둘이 친해진거야?"
어리둥절한 채 소울이 물었다. 이전의 일, 지금의 일,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많은 일들과 감정들을 전부 알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중심에 존재한다. 계속해서 구르는 바퀴는 제가 돌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가자, 소울." 마카는 구구절절하고 알아듣기 힘든 설명을 겹겹이 풀어놓는 것보다 쉬운 길을 택했다. 그러니까, 둘이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하면서도 결국 뒤를 따라오는 모습을 확인한 후로 마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소울이 다음에 보자는 형식적인 인사를 던지고, 키드가 짧게 대답하는 말이 들렸다. 쏟아지는 석양빛에 눈을 감으며 마카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신났을까. 의외로 조용할 수도 있었다. 보통 또래의 남자애들과 다름없을 것이다. 내 얘기를 했을까?
거기까지 미친 생각에 마카는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쓸데없는 생각. 똑같은 양의 물을 컵에 옮기는가 그릇에 옮기는가의 차이일 뿐이었다.
마카와 소울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됐을 때 키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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