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일이었다. 교내엔 이미 벚꽃이 만개했고 학생들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새학기의 여운에 몸을 맡긴채 꽃구경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교장은 '교내 환경 미화' 의 뜻에서 선택한 모양이지만, 정작 여느 축제 지역보다도 화려하게 핀 벚꽃나무 아래는 휴식과 연애놀음의 장소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단정한 교복을 차려입은 남녀 커플은 쉬는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가리지 않고 그곳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그 사실을 절감한 달래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제키보다 훨씬 큰 벚꽃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저렇게나 화려하게 봄을 알리고 있는데....... 지금은 차라리 꽃이 없는 나무였으면 했다. 제 본래 심성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타이밍이 기가 막혔을 뿐이다. 이럴거였으면 겨울에 고백할걸.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죽상을 하고서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별로 대화를 많이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예 말을 걸지도 못하게 되는 건 다르다. 그냥 하지 말걸 그랬나. 최종적으로는 암울하기 그지 없는 문장에 다다르며 저도 모르게 나무에 쿵 머릴 박아버리고 만다.


'나 지금 좀 혼란스러운데..'

 

'지금까지 너네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지냈는데.. 왜 니가 나한테 고백하는 건데?왜!왜!!'

 

토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왜 진해를 언급한건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분명히 진해는 누구보다 자신을 챙겨주는 단짝이지만 그게 고백과 무슨 상관이 있는건지 모르겠다. 그 일에 관해서 진해와 얘기해보았지만 그마저도 영문을 모를 반응뿐이었다. 게다가, 왜인지 그 사건 뒤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보인다. 토리를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좋아하다니, 아무리 단짝이라지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


생각할수록 기분이 복잡해질 뿐이다. 그냥 머리를 비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제서야 햇빛만큼이나 환한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이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은 왜 이제까지 보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멋지다. 그 사이로 보이는 긴 생머리 여자아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고정했다. 잊으려고 해도 생각나는, 부정할 수 없는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진다.


토리야.


조금씩 떨어지는 벚꽃잎과 지나치게 어울려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이상하지. 그렇게 소심하고 약해서 용기내지 못했었는데 고백이란걸 했다니. 분명 그만큼 좋아졌던거야.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항상 구석에 있던 조용한 아이. 대화 몇번 하지 않았던데다 예쁜 색의 눈도 잘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좋아하게 되다니, 떠올려보면 새삼스럽다.


"역시 난 네가 좋나봐. 그렇게 거절당해도...."


말소리가 조금 컸을까,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던 여자아이가 뒤를 돌았다. 어? 저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냈고, 상대의 반응도 만만찮았다. 놀란 표정과 붉어진 얼굴, 이여자아이.......

 

"......토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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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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