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승범]

조각 2014. 11. 11. 21:16

"또 잠복근무야?"


볼멘소리가 창밖에서도 선명하게 들린다.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태현은 바로 문의 잠금을 풀었다. 문이 홱 열리며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체구가 옆좌석에 자리잡았다. 지루한 시간죽이기에 핸들에 고개를 박고 있던 태현이 그제서야 옆을 돌아본다.

 

"승범씨."

 

태현보다 여덟 살이 어린 비공식적 파트너는 사실 고졸의 신분으로, 전혀 형사가 될 건덕지가 없는 몸이었다. 게다가 본인 또한 그런 일에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형사계와의 연결점이 있었다.

 

"..그거 죄수복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그냥 남방이라고."

 

어떻게 하면 이게 죄수복으로 보여? 라고 툴툴거리며 쳐다보는 표정에 웃음을 흘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짙은 색깔의 청남방은 얼핏 봐서 기결수의 죄수복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승범이 그 옷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물론, 면회를 갔을 때에 그는 '생각보다 편하긴 해'라고 말했었지만. 그렇다고 치죠. 여유있게 말하며 태현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옆에서 그가 왁왁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으나 태현에게 오늘의 일은 특히 중요했다.

 

가정폭력, 거기다 아동학대까지 겹쳐진 악질적인 범죄자는 격렬한 대치 이후 도주하고 절친한 친구의 집인 이 부근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아내와 딸은 그동안의 폭력으로 입원. 딸이라는 말에 살기가 등등해져 버럭대는 승범을 잠재우고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범인을 기다리는 일은 따분하기 그지없고, 기약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아오,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승범은 특히 이런 일에서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했다. 사실 힘이나 체력으로 치자면 왠만한 형사의 조수로 일할 수도 있을 법했으나 문제는 그의 성격이었다. 수감 생활 이후 그나마 진정된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같은 말투와 행동거지는 사사건건 걸림돌이 됐다. 그런 승범을 태현은 군말 없이 거두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부르곤 했다. 실제로 저번에 범인을 검거할 때에는 그의 공이 컸다. 그런데다 이런 지루한 상황에서도 그와 있는 것이 더 나았다.

 

"그래서 승범씨를 부른거죠."

 

"...뭐? 같이 해지는 거나 구경하자고?"

 

"비슷합니다."

 

"이봐, 지금 나랑 장난.."

 

...쳐.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승범이 말문이 막힌 듯 입술을 달싹였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태현이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멍청하게 쳐다보다 뭔가 말하려는 그의 입술이 막히고 몸이 뒤로 밀리며 쪽쪽대는 소리가 났다. 읏. 주춤하는 음성에도 태현이 멈추지 않고 밀어붙여 입술 새를 비집고 안을 휘저었다.

 

"흐으, 당신... 이럴려고."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요."

 

거짓말이다. 이미 남방을 열어젖히며 가슴팍을 더듬는 손에 승범이 옅은 숨을 뱉으며 신음했다. 그냥 시간 때우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눈치채야 했는데. 후회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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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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