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지나치게 무거웠다. 그리고 단정한 느낌. 방이라는 건 사실 분위기가 어떻든 들어있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걸까.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방금 전까지도 보았던 쵸로마츠의 표정이, 눈을 감아도 떠올랐다. 까맣게 암전된 머릿속에 제 혼자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 얼굴. 아마도 눈을 뜨면 아주 가깝게 보일 것을 구태여 상상으로만 대신하는 것은 마주했을 때의 그 낯설음을 견딜 수 없어서.
하아, 의미를 알 수 없는 숨결이 피부로 와닿을 때에야 그 거리를 지각했다. 이렇게나 가깝구나 하고 움찔 떨었다. 뚫어지게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쵸로마츠..? 조그맣게 중얼거려보지만 너무 소리가 작았는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 가까이온다. 쪽. 나긋한 입맞춤이 눈두덩이에 떨어지고 나서야 카라마츠는 살짝 눈을 떴다. 바로 그 표정이 앞에 있다. 평소와는 다른 나른한 눈을 맞춰옴에 심장이 박동한다. 혹시, 카라마츠ㅡ기대하는 거야? 낮은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듯 휘어지는 눈에 긴장으로 고인 침을 삼켰다.
자 그럼, 뭐부터 벗을까.
즐거움이 가득한 목소리에 몸이 전율한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목선을 타고 올라가 턱밑을어루만졌다. 살살 쓰다듬다 보드라운 볼을 감싸고 살짝 입맞춤. 입술이 닿는 순간은 짧고황홀하다. 툭. 선글라스가 가볍게 벗겨져 까만 눈을 드러내며 떨어졌다. 우선은 이게 좋겠어, 카라마츠.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귀를 타고 약처럼 스며든다. 시선은 잠시 갈피를 잡지 못하다 홀린 듯이 다른 이의 시야를 향했다. 웃음이 날만큼 정직한 눈길이 머무른다. 쵸로마츠는 부드럽게 카라마츠의 허리를 감싸며 벨트를 풀었다. 에. 예상대로의 반응이 가까이서 들려온다.
어째서 선글라스 다음은 벨트? 카라마츠의 생각이 훤히 보인다. 알아서 생각해. 볼에 쪽 맞추고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벗겨내자 역시나 가볍게 움칠거리는 움직임. 찢어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몸에 맞춘 바지는 무릎까지 내리고 멈췄다. 보고 싶은 부분은 보이는데다 어차피 알몸으로 만들어버릴거니까 상관없나. 쵸로마츠는 허벅지를 쓰다듬는 감촉을 좋아했다. 애완견의 머리털을 부벼줄 때나 볼만한 그 나른해지는 표정은 더 좋아했지만. 허벅지의 반을 가리는 트렁크는 그런 이유로 꽤나 거슬렸다. 도대체 왜, 그렇게나 패션에 신경쓰면서 트렁크 파인건지. 똑같은 옷 6벌의 여파는 속옷에까지 미친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 눈을 굴리던 쵸로마츠는 갑자기 협탁 위의 가위를 집어들었다. 그건 왜...?날이 잘 서있는 것이 가까워지자 반사적인 불안감으로 카라마츠가 뒷걸음질쳤다.
별 거 아냐, 카라마츠.
정확한 조준을 위해 눈을 좁힌 채 날을 세워 천을 자르기 시작했다. 얇고 넉넉한 속옷은 손쉽게 헤쳐져 치부를 드러냈다. 흔들리는 시선을, 쵸로마츠는 턱을 감싸는 것으로 간단히 잡아챘다. 쵸로마츠, 그거 팬티. 우물거리는 입이 제대로 말을 맺지 못하고 그저 다리를 모아 꽉 다물었다. 숨겨보겠다는 시도가 무색하게 다리 사이로 피가 몰린 성기가 고개를 들었다. 짧은 옷자락을 어떻게든 늘리려는 손짓이 애석했다. 그것도 자신의 얼굴이 프린팅된 탱크톱이라면 더더욱. 좋아, 그럼 저것부터. 날카로운 눈이 주욱 잡아당기던 윗옷을 향하자 카라마츠가 소스라치며 두 팔을 교차해 막았다. 무, 뭐, 뭐하는 거냐..!바로 나오는 특유의 굵은 목소리가 산통을 깬다. 아ㅡ분위기 좋았는데, 바보같은 카라마츠 형.
그래도 저 프린팅 탱크톱만큼은 없애버려야겠다. 살기를 띤 눈이 가까워지자 카라마츠가 몸을 움츠렸다. 옷이라고 부르기도 뭐할 정도로 얇은 천쪼가리에 가까운 탱크톱은 손쉽게 반으로 갈렸다. 드러난 가슴팍에 소름이 돋은 듯 카라마츠가 부르르 떨었다. 이제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우스꽝스러운 가죽 자켓 뿐이다. 나체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에 카라마츠가 두 팔로 제 신체를 끌어안았다.
쵸로마츠는 굳이 마지막으로 남은 자켓을 벗겨내지 않았다. 에..? 가늘게 눈을 뜬 쵸로마츠는 멍하니 보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가두고 이미 축축한 입술에 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가 입맞춤만으로 끝내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