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네] Lily

조각 2015. 2. 7. 01:06

 

아이는 망토를 벗어 대충 놓아두고 커다란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조그마한 방 안에 제 키보다 훨씬 높고 넓다란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매끄러운 표면에 작은 손을 대고 쓸어보았다. 거울 안에서는 마르고 하얀 소년이 살짝 느슨하게 귀에 걸쳐진 안경을 쓰고 시선을 맞춰왔다. 1학년인 아이의 키는 아직도 많이 작았다. 하지만 머글 집에서 지낼 때보다 살은 좀 더 올라있었다. 한참동안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듯 조심스럽게 거울을 만지던 아이는 편하게 주저앉았다. 곧 시작될 영화를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중해 거울을 보는 시선은 어린애답지 않아보였다.
순간 거울에서 흐릿한 형체들이 나타났다. 빗방울이 맺힌 것처럼 흐릿했으나 점점 또렷해져 젊은 부부의 모습을 띠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구불져 어깨를 덮은 여성은 아이와 똑닮은 싱그러운 색의 눈동자를 들어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얼굴을 했다. 곁에 붙어있는 남자는 아이의 성장판처럼 익숙한 생김새였다. 둥그런 안경까지도 그랬다. 그는 여인과 같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미소지었다.
처음 몸을 피해 숨겼던 방에서 이 거울을 발견한 뒤로 아이는 자주 이 곳에 들렀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수업이 빈 날이나 친구가 징계를 받아서 놀아주지 못하는 날이 되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보내준 투명 망토를 두르고 제 방처럼 드나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던 부모의 형상을 봤다. 생명 그 자체보다는 박제된 기억에 가까운 것과 만나며 위로받았다.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 보러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닿을 수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는 웃으며 손을 거울에 댄 채로 두꺼운 유리 너머의 손을 느낀 것처럼 더듬었다. 
 

 

.......

사람들은 이 앞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때론 미치기도 하지.


그래서 내일은 이걸 딴 데로 옮기려고 해.

진심으로 바라건대, 다시는 이 거울을 찾지 마라.

꿈에 사로잡혀 살다가 진짜 삶을 놓쳐선 안돼.


 

 


남자는 익숙한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와 문 앞에 도달했다. 가볍게 당겨 열자 미세한 마찰음이 났다. 학생에게 금지된 구역일 뿐인데도 괜히 주변을 살피게 되곤 했다. 남자는 작게 한숨을 쉬고 문을 닫았다. 그 여파로 먼지가 이는 것을 찌푸린 채 바라보다 망토자락을 끌며 거울 앞에 섰다.
소망의 거울. 그렇게도 불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어울리는, 부질없는 이름인지. 문득 남자는 이 거울을 처음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까맣게 마른 길다란 전신만이 비치던 거울에서 그렇게 갈망하던 여인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차오르던.......
항상, 그 머리칼은 우주에서 타오르고 있을 태양의 색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해왔다. 눈은 패트로누스의 빛처럼 파랬고 월계수 잎처럼 선명한 녹빛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가 제일 싫어하는 아이를 닮았다.......
남자는 잠시 신음같은 숨을 내쉬었다. 약간의 여유를 둔 뒤 거울에 바짝 다가가 노크하듯 건드렸다. 생각하던 그대로의 영상이 거울 속에서 재생되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의 여자아이가 남자를 바라보며 맑게 웃었다. 넘칠 듯한 애석함과 죄책감이 거울 속에서 흘러나와 남자를 휘감았다.  

 

 


....그런데, 자네는 무엇을 본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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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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