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간 해외는 여전히 활기차 예전 상처의 기억조차 지울 정도였다. 임무는 별 것 아닌 단순조사. 키드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 상당히 중요한 자료니 뭐니 열띤 설교를 늘어놓았지만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리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구석의 잡화점 안에는 노인이 느긋하게 신문을 읽고 있었다. 소울은 그저 들떠 이곳 저곳 탐문을 다니는 키드의 곁에 서서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는 키드의 행동만이 분주했다. 그런데 단순조사라면 왜 나를 데려온거지. 의문은 머릿속 한구석을 스쳤다가 큼지막한 음식 모형을 내건 파스타가게의 모습에 한순간 휘발되고 말았다.'이탈리아식 파스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은 소울에 키드가 메모지를 탁 덮었다.
-그럼, 점심은 여기로 할까.
-..에? ..정말이냐.
별 생각 없이 나온 말에 키드가 긍정적인 말을 꺼내자 소울은 되려 당황했다. 적어도 그가 생각했던 전개는 아니었다.
-먹자며?
-아니,뭐. 그래.
어색하게 얼버무리다 소울은 씨익 웃었다. 그럼, 사신님이 한 턱 쏘는 이탈리아식 파스타, 잘 먹겠습니다~! 기세좋게 외치며 건들거리는 걸음을 내딛었다. 키드가 살풋 웃음을 흘리며 뒤를 따랐다.
가게는 겉에서 본 것만큼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소소하게 잘 꾸며진 곳이었다. 내부는 조금 더 넓은 느낌으로 연인뿐만이 아닌 가족의 무리도 여럿 보였다. 볕이 잘 드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 소울이 바로 위에 올려진 메뉴판을 뒤집었다. 색색깔의 파스타와 피자, 각종 오븐구이와 와인 등의 메뉴 이름을 훑는 눈에 생기가 가득했다.
-어이 키드, 이거 봐. 생면이라고.
소울이 길쭉한 검지로 툭툭 봉골레 파스타를 가리켰다. 키드는 메모장을 펼치며 볼펜을 딸깍이다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이거 꽤 맛있다고 했다고. 어디서 조사라도 해온 건지 소울이 침을 삼키며 평소보다 높은 텐션으로 말하고 있었다. 조개로 둘러싸인 샛노란 면이 인상적인 메뉴였다. 딱히 흥미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떻게 말해도 소울은 이미 선택한 모양이라, 키드는 그럼 그걸로 할까 하며 긍정을 표했다.
-넌 뭔가 먹고 싶은 거 없냐? 아, 저녁이라면 와인이라도 시키는 건데 말이지.
소울은 이탈리아에 오는 게 두 번째다. 키드라면 언제든지 베르제브브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으니 해외 임무라는 것도 전혀 설렐 일이 아니지만 그에게는 다른 모양이었다. 소울은 여전히 이 가게가 얼마나 맛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메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것과 더불어 오래 전에 마카와 함께 이탈리아로 과외 수업을 하러 왔을 때의 이야기까지 풀어놓기 시작했다. 키드는 메모장을 완전히 덮고 적어도 사오년은 된 묵은 과거의 얘기에 집중했다. 소울은 보기와는 다르게 과묵한 편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수다스러운 타입도 아니었다. 쉴새없이 입을 벌려 즐거움을 쏟아내는 모습은 퍽 낯설어, 키드는 별스럽게도 임무 이외의 요소에 신경이 쓰였다. 셋팅된 수저를 문질거리는 손길은 다소 초조했다.
사실상 조사는 데스사이즈를 동행시킬 만한 일이 아니었다. '산타 마리오 노베라'성당. 그곳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광기의 영향을 알아보는 것. 아수라의 일은 나름 성공적으로 매듭지었으나 이미 세계 곳곳에 손을 뻗친 광기는 지속적인 관찰과 관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선적인 목적은 '탐색'이었으므로 굳이 데스사이즈나 되는 무기를 데려올 필요는 없으며, 굳이 원한다면 리즈나 파티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일부러 소울을 이끈 이유는.
-뭘 그리 멍하니 있어? 자, 빵 나왔다고.
-...아아.
잠시 상념에 빠져있었는지, 소울이 에피타이저로 나온 빵을 포크로 찍어 건넸다. 떠밀리듯 크림치즈를 찍어 베어문 빵은 따끈하고 말랑했다. 기본도 맛있다며 뺨이 불룩해지도록 입안에 빵을 밀어넣은 소울이 우물우물 소리를 냈다. 파티에서는 그 맛있는 뷔페식도 잘 먹지 않더니. 빤한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돌리고, 머쓱해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