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4.11.11 [시백건오] 어떤날
  2. 2014.11.11 [주황건오] 기다림
  3. 2014.11.11 [태성건오] 옷
  4. 2014.11.11 [재하대수] 또
  5. 2014.11.11 [무열승범] 안무현
  6. 2014.11.11 [태현승범]
  7. 2014.11.11 [달래토리] Don't give up.
  8. 2014.11.11 이영싫

[시백건오] 어떤날

조각 2014. 11. 11. 21:29

으윽, 악! 안을 울리는 제 목소리가 낯설어 눈을 질끈 감았다. 어마어마한 통증에 이를 악물 새도 없이 신음이 터져나왔다. 들어갈 수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느새 몸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헛숨을 삼키며 아픔을 줄이려 애써보지만 다 들어가자마자 움직이는 상대 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힉, 양..시백, 이. 욕을 이어가지 못하고 몸이 정처없이 흔들렸다. 머리가 팽글팽글 도는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제 의지와 무관한 동작에 날카로운 동통 외에는 그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제 몸을 깔아뭉개다시피한 시백만이 간헐적으로 흥분에 찬 소릴 뱉을뿐이다. 그 와중에도 귓가에 달라붙어오는 끈적한 숨에 건오가 허리를 비틀었다. 헉, 아파. 이새.. 끼야. 아프다고! 이제 거진 울음이 섞인 목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시백이 잠시 멈추었다. 정지 화면인것처럼 정적이 한참을 흐르고, 건오는 그가 머뭇거린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그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마..많이 아프냐? 건오는 저도 모르게 힘이 풀려 하윽, 소릴 내고 엎어지고 말았다.


이 엄청난 사건의 시작이 별것아닌 말다툼에서부터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사실 건오는 아래에 깔리기 전까지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격한 싸움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양시백이 그정도가 아니었으며 허건오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눌려 쓰러질 때에야 건오는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평소에 남아도는 힘을 아끼고 억누르는 탓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무겁고 무자비한 힘에 버둥거려봤지만 또래보다 월등히 체격이 좋은 그를 밀어내기란 역부족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옷이 뜯어질듯 벗겨지고 양팔을 모아 구속해오자 건오는 새된 소릴 질렀다. 이 미친,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대로 바지가 벗겨지고 속옷까지 내려진 뒤, 단번에 꿰뚫렸다.
......그 뒤로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아직도 아린 듯한 그곳의 통증에 건오가 찌푸리며 살짝 돌아누웠다. 옆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서가 맞았다. 분명 당한건 이쪽인데 왜 저렇게 불쌍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꼭 버려진 개새끼같다. 눈을 꼭 감고 한참을 있어도 시선이 떨어지질 않는다. 에이씨...... 평소처럼 투덜거리며 건오가 몸을 돌렸다. 움찔하는 시백과 눈을 맞췄다. 아, 그렇게 보고있지 말고 약이나 사와! 큰 소릴 내니 또 개새끼처럼 눈치를 살피며 나간다. 더 필요한 건 없냐는 그다운 질문도 잊지 않고. 아오, 저 모자란 놈. 그런 짓할거면 끝까지 하고 사과나하지 말지, 애매하게 멈추고 무르게 굴어서 미워하지도 못하게 만든다. 깊은 한숨을 들이쉰 건오는 그가 닫고 나간 문을 멀거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사오라고 한 약과 그 외의 주문하지 않은 것들을 한아름 안고 돌아올 그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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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건오] 기다림

조각 2014. 11. 11. 21:27

어떻게 죽더라도 천국은 못 갈거다. 늘 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제가 한 짓이 누구의 압박 때문이건, 사정이 있었건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이리 죽어버린 것도, 이런 괴이한 장소로 떨어진 것도.
몇백의 시체를 모아야 이 정도로 끔찍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구덩이와 혈색으로 뻘건 점막같은 것이 사방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아마 이 곳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부터 제가 힘을 쓸 수 있었을까. 사실 무엇을 하더라도 바뀔 운명이 아니었다. 발을 디딜 때부터 이리 될 결과였을지도. 다만 걱정인 것은 남겨두고 온 것들이었다. 하태성 씨, 애송이......., 함께 자유로워지자고 했었는데. 마지막 통화를 떠올리며 남은 두사람의 안위를 생각했다. 혹시 발각된 계획으로 위험해진 건 아닌지. 특히 불안해하던 건오에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히 아플리없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가 수락했지만, 엄연히 자신이 끌어들였다. 만약 애송이가 죽는다면.

애송이, 너나 나나 천국갈 위인은 못 되지.
중얼거리며 까맣게 어딘가로 이어져있을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죽지 않기를 바란다. 1년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생을 생각한다. 허건오에게 갖고있는 감정이 완벽히 친동생을 보던 것과 같지는 않았지만 닮은 구석이 없지는 않았다. 그 감정들 사이의 틈, 애매함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혹시 오게 된다면,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의외로 여린 녀석이니 안아주면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한참 애송이를 달래고, 그리고 함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겠지. 오지 않길 바라면서도 그 장면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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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성건오] 옷

조각 2014. 11. 11. 21:22

후우.


짧은 숨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보일러를 틀 생각도 못하고 잠이 들어 차가운 아침 공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용케 이 시간까지 깨지 않고 잠들어있었다고 생각하며 옆을 보니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한
건오가 뒤척인다. 살짝 걷힌 이불 사이로 들어오는 추위 탓이리라. 그런데도 간밤의 일이 피곤한지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성급했다. 대충 벗어 던져놓다시피 한 안경을 걸쳐 쓰며 태성은 어젯밤
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가끔, 하지만 건오를 만난 뒤부터는 좀 더 잦아졌을지 모르는 무이성의 빈도.
그것이 확실해지자 갑작스레 머리가 쑤셔왔다. 윽,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있으려니 가볍게 이불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해...어디 아파?"


잠이 덜 깬 목소리에 반쯤 뜬 눈으로 묻는다. 아직 몸은 이불에 꼭 묻은 채다. 그 모습에 또 뭐라 설
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 두통이 번쩍 깬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분과는 다른 말을 뱉으며 살짝
시선을 돌렸다. 생각을 정리하려는 찰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얕은 신음이 들렸다.


"..건오씨?"


"으, 나..아직, 안에..."


뒷말을 잇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찌푸린 얼굴로 그가 움직이려다 멈춘다.
어젯밤, 추운 날씨 탓에 그를 제 집에 들였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끓어오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
을 댔고, 동의 하에 밤을 보냈다. 생각 이상으로 격해졌던 행위 후 둘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당연히
뒷처리조차 하지 못해 건오는 꽤 찝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깊게 한숨을 들이쉬고 태성은 이불을 걷
었다. 일어서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그를 힘을 주어 안아들었다. 뭐, 뭐야.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으
로 바라보면서도 아직 힘겨운건지 크게 반항하지 않는다. 그대로 욕실로 직행했다.

 

 

 

 

잠시 그를 욕실에 두고 나와 옷가지들을 뒤적였다. 똑같은 성인 남자이니 입힐 만한 옷이 있을 것이다.
보일러를 틀긴 했지만 너무 얇은 옷은 전부 구석에 몰아놓고 적당한 옷을 한벌 꺼내들었다. 곱게 포개
어놓고 다시 욕실로 들어간 태성은 목욕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았다. 개어 놓은 옷을 그에게 건네고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했다. 대강 정리를 마친 태성의 뒤에서 건오가 조그맣게 말했다. 대장나리, 옷...
....


"옷이 얇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태성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자주 입는 옷이 맞지 않게 늘어졌고 헐렁하게 그의 몸에 걸쳐져 있었
다. 생각해보면 그는 키도 저보다 작았고 체격 또한 차이가 났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몸을 돌려
좀 더 깊숙한 서랍장 안을 뒤졌다. 익숙한 옷을 꺼내서 갈아입으라며 주었다.


"이건 누구 옷인데?"


"아, 제가 학생 때 입던 옷입니다."


"그래, 학생 때...뭐?"


"....."


"......"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뭐라 궁시렁거렸지만 결국 태성이 졸업 전에 입었던 옷을 꿰어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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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대수] 또

조각 2014. 11. 11. 21:19

적당히 수염을 기른 날렵한 인상의 남자가 카페의 구석 쪽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보는 척하며 통유리로 된 벽 너머를 힐끔거리고 있다는게 맞겠지만, 아무튼 그는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옆에서 긴 머리를 단정히 묶은 아르바이트생이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눈치를 주는 것도 모른 채 아메리카노 한잔을 달랑 두고 오후 시간을 때우는 짓거리에 직원들까지도 애를 태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단순하게, 하지만 매우 예리하고 집요한 눈길을 어딘가로 보내고 있었다. 가끔 카페 안의 시계로 시간도 확인해가며 밖을 훑는 그에게 관심 외의 사람은 아예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 별안간 광고를 줄창 보고 막 영화가 시작될 쯤처럼 얼굴을 굳히며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찾는 사람이 나타났나 싶어, 이제 곧 가겠다며 직원들은 내심 안심하고 만다. 남자는 벽에 붙을 것처럼 가까이 가서 본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모습에 모두가 기대에 부풀었을 때, 그는 기가 막히다는 듯 바람빠진 웃음소릴 내며 말아쥔 신문을 테이블에 내팽개쳤다.


"...또 저놈이야, 내참."


허탈한 어조다. 거기서 느낀 불안함이 무색하지 않게, 남자는 잠시 밖을 보다 곧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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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승범] 안무현

조각 2014. 11. 11. 21:18

"그 쪽이 아니지 않나. 형편없구만."

 

"아, 제대로 말해줘야 알 거 아냐!"

 

"충분히 얘기했네만."


머릿속이 청순하다는 말 많이 안 듣나? 연이은 막말에 정신을 놓은 것은 당사자가 아닌 옆의 사람들이었다. 좁은 사무실 안에서 다 울리도록 질러대는 승범의 소리도 멀게만 느껴졌다. 태현과 지은은 어쩐지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며 두 사람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승범이 퇴소하고 난 후 들어온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아무리 형량이 가볍다고 하지만 년 단위였으므로 한동안은 세 사람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사무소를 운영해왔다. 엄연히 말하면 첫 신입이자 막내가 되는 셈이다. 생긴 것과 다르게 나이도 제일 어린데다 남아도는 게 힘인 승범은 사무실의 궃은 일을 도맡아했다.


그 중에서도 승범을 하루가 멀다 하고 부려먹는 것이 하무열이었다. 원체 체력이 약해져있어서 회복이 필요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태현은 어느새 그것이 버릇이 된건지도 모르겠다고 판단했다. 그도 그럴것이, 간단한 것에서 힘든 일까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서 간단한 일까지 시킨다 싶을 정도로 심했던 것이다. 거기다 세상의 모든 저주를 쏟아붓는 것처럼 무자비한 막말의 쇄도는 여유있는 지은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다. '혹시 과거에 소장님한테 잘못한 게 있나요?' 라는 그녀의 질문을 들었을 때 태현은 심란한 심정으로 답했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저, 무열 선배.."

 

"무슨 일인가? 다들 부재중이라네."

 

"그게 아니고..."

 

힐끔 보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리는 그에게 재차 말을 걸었다. 명색이 소장이라고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으면서 제일 부산스럽다. 조심스럽게 신경쓰이던 것을 입밖에 내본다. 승범씨 말인데요.

 

"그 녀석은 왜?"

 

"아, 그게.. 혹시 안좋은 감정이 있으신가 해서요."

 

잘 말해보려고 했는데, 요약하자면 '안승범을 싫어하냐'는 말이다. 무열이 살풋 미간을 찡그리더니 이내 픽 웃어보였다.

 

"그런 일은 없네."

 

"그럼, 괴롭히는 이유가 뭡니까?"

 

"뭐긴 뭐야."

 

재미있으니까지. 다시금 빠루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마냥 멍한 표정을 한 태현의 곁에서 그가 여유롭게 서류를 팔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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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승범]

조각 2014. 11. 11. 21:16

"또 잠복근무야?"


볼멘소리가 창밖에서도 선명하게 들린다.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태현은 바로 문의 잠금을 풀었다. 문이 홱 열리며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체구가 옆좌석에 자리잡았다. 지루한 시간죽이기에 핸들에 고개를 박고 있던 태현이 그제서야 옆을 돌아본다.

 

"승범씨."

 

태현보다 여덟 살이 어린 비공식적 파트너는 사실 고졸의 신분으로, 전혀 형사가 될 건덕지가 없는 몸이었다. 게다가 본인 또한 그런 일에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형사계와의 연결점이 있었다.

 

"..그거 죄수복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그냥 남방이라고."

 

어떻게 하면 이게 죄수복으로 보여? 라고 툴툴거리며 쳐다보는 표정에 웃음을 흘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짙은 색깔의 청남방은 얼핏 봐서 기결수의 죄수복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승범이 그 옷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물론, 면회를 갔을 때에 그는 '생각보다 편하긴 해'라고 말했었지만. 그렇다고 치죠. 여유있게 말하며 태현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옆에서 그가 왁왁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으나 태현에게 오늘의 일은 특히 중요했다.

 

가정폭력, 거기다 아동학대까지 겹쳐진 악질적인 범죄자는 격렬한 대치 이후 도주하고 절친한 친구의 집인 이 부근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아내와 딸은 그동안의 폭력으로 입원. 딸이라는 말에 살기가 등등해져 버럭대는 승범을 잠재우고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범인을 기다리는 일은 따분하기 그지없고, 기약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아오,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승범은 특히 이런 일에서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했다. 사실 힘이나 체력으로 치자면 왠만한 형사의 조수로 일할 수도 있을 법했으나 문제는 그의 성격이었다. 수감 생활 이후 그나마 진정된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같은 말투와 행동거지는 사사건건 걸림돌이 됐다. 그런 승범을 태현은 군말 없이 거두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부르곤 했다. 실제로 저번에 범인을 검거할 때에는 그의 공이 컸다. 그런데다 이런 지루한 상황에서도 그와 있는 것이 더 나았다.

 

"그래서 승범씨를 부른거죠."

 

"...뭐? 같이 해지는 거나 구경하자고?"

 

"비슷합니다."

 

"이봐, 지금 나랑 장난.."

 

...쳐.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승범이 말문이 막힌 듯 입술을 달싹였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태현이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멍청하게 쳐다보다 뭔가 말하려는 그의 입술이 막히고 몸이 뒤로 밀리며 쪽쪽대는 소리가 났다. 읏. 주춤하는 음성에도 태현이 멈추지 않고 밀어붙여 입술 새를 비집고 안을 휘저었다.

 

"흐으, 당신... 이럴려고."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요."

 

거짓말이다. 이미 남방을 열어젖히며 가슴팍을 더듬는 손에 승범이 옅은 숨을 뱉으며 신음했다. 그냥 시간 때우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눈치채야 했는데. 후회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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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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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일이었다. 교내엔 이미 벚꽃이 만개했고 학생들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새학기의 여운에 몸을 맡긴채 꽃구경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교장은 '교내 환경 미화' 의 뜻에서 선택한 모양이지만, 정작 여느 축제 지역보다도 화려하게 핀 벚꽃나무 아래는 휴식과 연애놀음의 장소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단정한 교복을 차려입은 남녀 커플은 쉬는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가리지 않고 그곳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그 사실을 절감한 달래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제키보다 훨씬 큰 벚꽃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저렇게나 화려하게 봄을 알리고 있는데....... 지금은 차라리 꽃이 없는 나무였으면 했다. 제 본래 심성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타이밍이 기가 막혔을 뿐이다. 이럴거였으면 겨울에 고백할걸.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죽상을 하고서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별로 대화를 많이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예 말을 걸지도 못하게 되는 건 다르다. 그냥 하지 말걸 그랬나. 최종적으로는 암울하기 그지 없는 문장에 다다르며 저도 모르게 나무에 쿵 머릴 박아버리고 만다.


'나 지금 좀 혼란스러운데..'

 

'지금까지 너네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지냈는데.. 왜 니가 나한테 고백하는 건데?왜!왜!!'

 

토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왜 진해를 언급한건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분명히 진해는 누구보다 자신을 챙겨주는 단짝이지만 그게 고백과 무슨 상관이 있는건지 모르겠다. 그 일에 관해서 진해와 얘기해보았지만 그마저도 영문을 모를 반응뿐이었다. 게다가, 왜인지 그 사건 뒤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보인다. 토리를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좋아하다니, 아무리 단짝이라지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


생각할수록 기분이 복잡해질 뿐이다. 그냥 머리를 비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제서야 햇빛만큼이나 환한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이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은 왜 이제까지 보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멋지다. 그 사이로 보이는 긴 생머리 여자아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고정했다. 잊으려고 해도 생각나는, 부정할 수 없는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진다.


토리야.


조금씩 떨어지는 벚꽃잎과 지나치게 어울려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이상하지. 그렇게 소심하고 약해서 용기내지 못했었는데 고백이란걸 했다니. 분명 그만큼 좋아졌던거야.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항상 구석에 있던 조용한 아이. 대화 몇번 하지 않았던데다 예쁜 색의 눈도 잘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좋아하게 되다니, 떠올려보면 새삼스럽다.


"역시 난 네가 좋나봐. 그렇게 거절당해도...."


말소리가 조금 컸을까,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던 여자아이가 뒤를 돌았다. 어? 저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냈고, 상대의 반응도 만만찮았다. 놀란 표정과 붉어진 얼굴, 이여자아이.......

 

"......토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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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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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싫

조각 2014. 11. 11. 21:08

"그, 뭐냐..그러니까."

 

 

다나는 잠시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를 의심하며 앞을 둘러보았다.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혜나와, 진지한 표정의 나가. 그리고 커다란 날개를 안절부절하며 펄럭이고 있는 사사. 그는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사사의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아예 말을 못한다는 설정으로 가자. 이거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의 주인공인 사사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혼혈인의 직감 덕인지 그는 늘 홀로 걱정하는 편이다. 바로 곁에 있던 나가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해도 상태는 그대로였다. 보다못해 다가서자, 달달 떨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뒤쪽?

 

 


"..더당님...."

 

 


우지끈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두동강난 팻말이 바닥을 뒹구는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나가는 사사가 불안했던 원인을 알 수 있었고, 곧 닥칠 상황을 예견했다.

 

 


"장난치냐?! 신비스러운 이미지라고 했지 누가 벙어리라고 해?!"

 

 


"그렇지ㅁ..."

 

 


"좋아, 한마디만 더해라."

 

 


그 말을 듣고 한마디나 더할 인간이 있을까? 옆에 있던 귀능이 안쓰럽게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확실히 세 사람이 주장하는 방법은 무리수가 있긴 했다. 스폰서가 되주겠다는 명문가의 따님, 그리고 그 따님이 마음에 들었다며 만남을 요청한 것은 스푼의 타칭 '얼굴마담'인 사사. 그에 대한 대책으로 아예 말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으로 가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사사의 이미지를 메이킹하기 위한 의도에서라지만, 그 작전조차도 허점이 있었다. 아무리 잘생겼다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좋아할까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과묵한 편인 세살 발음 히어로' 라는 것도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 그의 발음은 아이의 엄마라도 되야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세살배기 발음이었기 때문이다. 입을 여는 순간 깬다는 것은 스푼의 사원 모두가 공감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했다간 앞에 있는 사람에 의해 뼈와 살이 분리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도 언니, 어쩔 수 없어. 그 애 나이도 어리다며? "

 

 


완전히 오빠를 백마탄 왕자님처럼 생각하고 있을텐데, 듣는 순간 박살이야 박살. 침묵을 깨고 총대를 맨 것은 혜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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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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